Substack에서 쓰는 첫 글이기에 간단한 제 소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구독자분들이 많이 유입되기를 바라는 향후 몇달 간은 소개글을 상단에 계속 달아놓겠습니다.
신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휴학생 & 사회복무요원
관심사: 회계(AICPA, 미국 공인회계사), 재무(CFA, 국제재무분석사), 투자(투자동아리)
글 작성 시 모토는 ‘80%의 Fact와 20%의 Insight’입니다. 투자동아리 선배님이 해주신 말씀인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기에도,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에도 적합한 말이라 모토로 삼았습니다.
작성주기도 고민이 많았는데 일단 주기 없이 작성해보고 훈련소 다녀온 뒤 정기적으로 작성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훈련소는 7월 예상이지만 미정입니다…)
독자분들은 K-GAAP과 K-IFRS의 차이를 알고 있는가? K-GAAP은 비상장사에게 적용되고, K-IFRS는 상장사에게 적용되는 정도의 차이는 누구나 알고 있다. 회계 수업을 들어봤다면 K-IFRS는 원칙주의이기에 자율성을 어느정도 부여하고, K-GAAP은 규칙주의이기에 세세한 항목에 모든 규정이 나와있다는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회계처리는 물론 공시 방식에도 크고작은 차이점이 무수히 많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볼 때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중 무엇을 먼저 볼 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재무제표를 정보로 이용하는 정보이용자는 채권자, 주주, 정부로 나눌 수 있다. 정부는 손익계산서의 법인세차감전이익에 따른 법인세에 주로 관심을 가지므로 채권자와 주주 입장에서 볼 때, ‘모든’ 기업에서 재무상태표의 부채비율을 보지 않는 정보이용자는 없다. 기업의 자본과 부채에 대한 분석은 채권자와 주주 모두에게 기본 중의 기본인 정보이다. 그런데 자본과 부채의 분류에 대한 회계기준의 차이로 자본잠식 상태가 되고 5,400억의 손실이 생겼다면 믿으시겠는가?
스마일게이트RPG
스마일게이트는 게임회사이고 대표 게임은 로스트아크이다. 필자는 게임을 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로스트아크에 대해서는 꽤 들어본 것 같다. 사냥을 떠난다고 하던데…잘 모른다. 이번 글을 작성하며 실적을 보고 크게 놀랐다.
로스트아크 출시가 2018년 11월이고 정식 서비스 개시가 2019년 12월이니 로스트아크의 성공이 동사를 매출 7천억, 영업이익률 5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상장사라면 매우 보수적으로 잡아도 3조는 평가받을 기업이다. 실적 추이를 보면 알겠지만, 동사는 2019년 이전에는 계속해서 적자를 내며 암흑기를 겪었다. 흔히 기업들이 그렇듯, 동사 역시 전환사채를 발행하여 급한 자금을 조달하였다.
전환사채의 회계처리
하이브리드 증권이란 부채와 자본의 중간 그 어딘가 존재하는 성격을 가진 증권이다.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상환우선주(RCPS) 등이 이에 해당한다. 부채의 성격을 가지면서 자본으로 전환할 수도 있고(전환사채, 교환사채), 자본의 성격을 가지면서 상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상환우선주, 전환상환우선주). 심지어는 부채는 부채대로 원금과 이자를 수취하고 주식을 매수할 권리를 지니기도 한다(신주인수권부사채). 필자가 보기에 회계기준에 따라 가장 극심한 변화를 보이는 지점이 하이브리드 증권이다.
전환사채는 기업들이 높은 금리는 부담하기 싫고,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는 싫거나 어려울 때 가장 흔히 발행하는 증권이다.(기업의 자금 조달 순서는 보유현금 > 부채 > 자본 순이다. 이는 주주요구수익률이 채권자요구수익률보다 높기 때문인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세한 사항을 알아보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기에 액면이자가 매우 낮거나 없다.
전환사채의 회계처리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액면이자, 원금, 상환할증금을 시장할인율로 할인한 현재가치를 구한다. 상환할증금이란, 투자자의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한 금액이다.
계산한 현재가치 금액은 일반사채 회계처리와 동일하게 시장할인율에 따라 상각한다.
발행금액과 현재가치 금액의 차이는 전환권대가로 재무상태표에 표시된다.
즉, 일반사채와 발행금액을 비교하는 것이다. 일반사채로 발행했다면 9,000원을 받았어야 하는데 전환사채로 발행해서 10,000원을 받았다면 1,000원 만큼이 전환권대가가 되는 것이다.
이때 전환권대가를 부채로 볼 지, 자본으로 볼 지가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K-GAAP은 전환권대가를 자본으로 보고 K-IFRS는 전환권대가를 부채로 본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많아 금융감독원도 특정 사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서 제1032호에 따르면, 금융상품을 자본으로 분류하려면 상환해야 할 의무가 없고, 발행자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금융상품을 교환해야 할 의무가 없어야 한다. 또한 변동 가능한 자기지분상품을 인도할 의무가 없거나, 확정 수량의 자기지분상품에 대하여 확정 금액으로만 교환될 파생상품이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금융상품을 상환해야 할 필요가 없거나, 상환청구권이 발행자에게 있거나, 전환 또는 신주인수에 따른 주식 수량과 금액이 고정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전환사채에 적용하면 전환가격 재조정 조항(Refixing, 리픽싱 조항)이 있으면 부채로 분류하고 없으면 자본으로 분류해야 한다. 전환사채 발행 시 리픽싱 조항이 대부분 있는데, 이는 주가가 하락해서 전환권이 쓸모없어지는 상황을 방지하는 투자자 보호 조항이다.
스마일게이트RPG 전환사채
스마일게이트RPG가 발행한 전환사채는 전환에 특이한 조건이 달려있었다. 바로 스마일게이트RPG가 IPO를 위해 상장 예비 심사 청구서를 제출하고 거래소에 의해 승인된 다음 날부터 전환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감사보고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전환사채 만기 직전 사업연도의 당기순이익이 120억원 이상일 경우 IPO를 추진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문제가 된 전환사채에 투자한 투자자는 라이노스자산운용이다. 로스트아크가 큰 성공을 거두고 3천억의 이익을 내는 기업이 된 만큼 스마일게이트RPG가 상장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엑싯할 수 있었다. 그러나 K-GAAP과 K-IFRS의 차이가 ‘투자 대박’의 장애물이 됐다.
상장을 하려는 비상장사는 K-IFRS로 재무제표를 공시하여야 한다. 이때, 리픽싱 조항이 있는 전환사채가 있다면 전환권대가가 자본에서 부채로 옮겨가게 된다. 자산과 부채는 측정의 대상이고, 자본은 잔여지분이다. 전환권대가가 부채가 된 순간 공정가치를 평가하여야 하고, 공정가치와 기존 자본으로 계상되던 장부가치의 차이는 평가손익으로 영업외손익에 들어가 당기순이익에 반영된다.
스마일게이트RPG는 2022년 재무제표부터 K-IFRS를 적용하였다. 그러자 전환권대가의 공정가치가 평가되어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부채로 계상되었고, 파생상품평가손실 5,400억이 추가되었다. 이는 원래대로였다면 3천억 남짓이었을 당기순이익을 1,400억의 당기순손실로 둔갑시켰고, 전환사채의 IPO 계약 조건에 따라 스마일게이트RPG는 상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투자자인 라이노스자산운용은 현금 유출입이 없는 장부 상의 손실이니 약속대로 IPO를 추진하라고 하였지만 스마일게이트RPG는 계약조건을 들며 IPO에 나서지 않았고 라이노스자산운용은 소송까지 걸었다. 결국 이 상태로 1년이 지났고 만기일이 도래했다. 아직 소송은 진행 중이며 라이노스자산운용은 상환받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으나 계약 상 스마일게이트RPG에는 문제가 없다. 결국 전환가능성이 사라지니 전환권대가의 공정가치를 다시 평가하여 파생상품평가이익을 잡게 되었고 스마일게이트는 2023년 당기순이익 6,500억, 부채비율 50%의 매우 건실한 기업이 되었다.
결론
전환권대가가 부채로 계상되든, 자본으로 계상되든 기업의 실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로스트아크는 계속해서 잘 되고 있고 실적은 잘 나오고 있다. 그러나 회계기준의 차이가 5,400억의 차이를 만들었고 매우 높은 투자수익을 거둘 것으로 보이던 훌륭한 투자를 낮은 이자와 원금만 회수하는 사실상 실패한 투자로 만들었다. 라이노스자산운용이 계약할 당시 이러한 부분조차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안타깝다. 회계적인 금액을 기준으로 계약을 할 때는 어떤 회계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명시하는 것이 필수이다. 회계법인에 자문을 한 차례라도 받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는 뜻이다.
정보이용자들이 K-GAAP과 K-IFRS의 미세한 차이를 알고 의사결정을 하기는 어렵고 불가능하다. 다만, 회계는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합의라는 점은 알아야 한다. 기업의 실질은 변하지 않아도 회계적인 숫자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회계를 공부하면 할수록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기업에 대한 생생한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CAGR 얼마로 성장하고, OPM 얼마고, PER 지금 얼마니까 너무 싸다! → 시장은 모두 같은 숫자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