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PE의 선택은?
저출산과 고령화, 자본의 해외 유출, 1%대로 진입하는 잠재성장률. 암울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PE는 어디서든, 어떻게든 기회를 찾는 '수익 사냥꾼'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선택할까요? 한국의 참고서 일본을 들여다봅시다.
2025년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2023년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시작해 2024년에는 투자 동아리 활동, 다수의 스터디, aicpa 시험 준비 등 여러 인풋을 집어넣었고 2025년은 아웃풋이 기다리고 있는 해이기 때문인데요. 그래서인지 요즘 뉴스레터 발행이 조금 뜸해졌는데, 다시 뉴스레터에도 집중해보겠습니다.
오늘 글은 신한투자증권 박석중 애널리스트 님의 ‘한국의 미래’ 리포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성했습니다. 매크로에 대한 공부를 따로 많이 하진 않지만 꾸준히 챙겨보는 소스가 몇개 있는데, 박석중 애널리스트 님 리포트가 그 중 하나입니다. 항상 좋은 리포트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일본의 과거 매크로 상황과 한국의 현재 매크로 상황은 경제와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은 [한국의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부터 읽으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소제목 ‘일현한미’는 일본의 현재, 한국의 미래를 뜻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Contents
서론
일본 매크로 톺아보기(1980-2000)
일본의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
한국 매크로 톺아보기(현재)
한국의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
- 일현한미 Case Study 1) SK 리밸런싱은 한앤컴퍼니가 책임집니다
- 일현한미 Case Study 2) 떨어진 칼날 싸게 사기(캑터스PE-동부제철)
저출산과 고령화에서의 시사점(필연적인 승계 문제)
- 일현한미 Case Study 3) 미리 대비하는 그들, 리버티랩스&제이원PE
서론
푸념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요즘 들어 한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매우 크다. 국민으로서도 걱정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갈 확률이 높은 한 구성원으로서 미래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생산가능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고(노동), 한국의 인재들과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고 있다(자본). 2024년 미국 내 해외기업 일자리 창출 기여도에서 한국이 1위라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시대는 불에 기름을 붓고 있으며 OECD, IMF, 한국은행 등 국내외 주요기관 모두 한국의 1%대 성장을 외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일본의 사례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매크로 예측을 하거나 경제 정책에 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을 뿐더러, 필요한 범위 외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궁금한 것은 한국의 정해진 미래로 일컬어지는 일본의 장기불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어떤 선택을 했으며, PE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다만 일본도 한국처럼 PE의 역사가 길지 않아 Case Study를 할 만한 투자 사례가 적다는 점은 아쉽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유사점, 한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관련 사례를 알아보자.
일본 매크로 톺아보기(1980-2000)
일본은 한때 GDP 총액 기준으로도, 1인당 GDP 기준으로도 세계 2~3위였던 국가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로 전자제품을 개발하여 기술경쟁력을 키웠고 오일 쇼크 이후 급등한 유가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대형차 중심인 미국차보다는 소형차 중심인 일본차를 선택하게 했다. 심지어 엔저 현상이 매우 심했기에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하게 되었고 해외 무대에서 ‘Made in Japan '은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본 경제는 연간 10% 내외의 고성장을 기록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무역적자가 너무 심해진 상황이었다. 이에 미국은 무역적자 해결을 위해 일본, 독일 등 경제대국과 플라자 합의를 맺게 된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이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다른 나라 화폐 가치를 올리도록 한 합의를 말한다. 시행 이후 엔/달러 환율은 240엔에서 1년 만에 150엔까지 급속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엔고 현상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일본 제품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고, 상대적 가격 하락에도 자국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플라자 합의 2년 뒤인 1987년 미국은 다시 한번 경제대국들과 루브르 합의를 맺게 된다. 루브르 합의에서는 일본에게 시장 개방과 내수 활성화를 요구했고, 이 수단 중 하나가 금리 인하였다. 일본 또한 엔고 현상이 지속될 경우 수출 경쟁력이 타격 받을 것을 걱정하여 금리를 낮추는 데에 동의하고 유동성을 확대했다.
수출은 이미 잘되는 상황에 금리도 낮춰 내수 경기까지 부양하니 일본 경제는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투자 → 임금 상승 → 소비 확대의 선순환이 이어졌고 기업들은 계속해서 고용을 확대했다. 이러한 상황은 자산 가격의 상승을 불러왔고 부동산, 주식 할 것 없이 투기 열풍이 시작되었다.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땅값은 치솟았고, 기업과 개인 모두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부동산과 상관 없는 기업들까지 부동산 투자를 이어나갔다. 닛케이 또한 연일 최고가를 달렸고, 시가총액 기준으로 뉴욕증권거래소까지 뛰어넘어 세계 1위 규모를 달성했다.
하지만 끝없는 상승도, 끝없는 하락도 없다. 일본 중앙은행은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를 단행했고, 자산 가격은 빠르게 하락했다. 자산 가격의 하락은 담보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져 부실채권(NPL) 비율을 급증하게 했다. 버블은 항상 대출에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1980년대 후반의 부동산 투기 열풍은 모기지 과잉을, 모기지 과잉은 1990년대의 불황을 불러왔다.
그 후 동아시아 금융위기까지 터지며 불황은 계속되었고, 금리 인하에도 수요가 회복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며 일본은 장기불황의 길을 걷게 된다. 1998년에는 19,000개의 기업이 파산했고 개인 파산도 10만 건을 넘어섰다. 이어서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GDP 성장률이 20년 간 0% 내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 측면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장기불황을 겪기 전 일본은 제조업 패권을 쥐고 있던 국가였다. 앞에서도 알아봤듯이 전자 분야에는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 글로벌 강자가 포진해있었고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은 GM, 포드 같은 정통 강자들과 경쟁했다. 한국, 중국의 제조업이 성장하기 전이었기에 철강, 조선 등 중화학공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대부분 산업 분야의 글로벌 1~3위 내에 일본 기업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에서는 일본 기업이 세계 10대에 8개, 세계 50대에 33개나 포진해있었다. 통신사인 NTT가 글로벌 시가총액 1위를 차지했고, 4대 메가뱅크가 2~5위를 차지하며 미국의 엑슨모빌, IBM보다 큰 회사가 되었다.
그 후에는 설명한 것처럼 1990년 버블의 붕괴,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겪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를 모두 경제정책의 실패, 금융 이벤트의 영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또 다른 원인은 제조업 패권의 약화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업 패권은 20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국가가 성장하며 동시에 여러 생산비용도 상승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또한 상승하게 되는데, 지속된 설비투자와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제조업에게 비용 상승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1900년대 중반에는 미국과 영국이, 1990년대 후반에는 독일과 일본이 같은 길을 걸어왔다.
일본의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
하지만 위기에서 위기임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본 또한 그러했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는 불황은 일시적이며 부동산, 금융의 문제이기에 제조업은 건실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비용만 줄이며 잠깐의 불황에서만 생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자 이제야 제대로 위기임을 깨달았다. 제조업의 종업원 수가 감소하고 가동률이 줄어드는 등 여러 지표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1997년에는 4대 증권사였던 야마이치증권이 폐업하고 1998년에는 훗카이도 타쿠쇼크은행이 파산하는 등 금융권에서 먼저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20개 이상이었던 시중은행 구조가 대형 3대가 주도하는 체제로 재편되었다. 금융권에서의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다른 산업까지 근본적인 문제 인식과 함께 사업구조의 재편이 시작되었다. ‘선택과 집중’의 시기였다.
일단 경쟁력 없는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이 이루어졌다. 14개사 체제였던 정유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 5개로, 2016년에는 현재의 3사 체제로 재편되었다. 5개사 체제였던 철강산업도 3사 체제로 재편되었고 이 과정에서 2,3위 철강사였던 NKK와 가와사키 제철이 합병하게 된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막강한 경쟁력을 뽐냈던 닛산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1999년 르노가 지분을 인수하며 얼라이언스를 체결했다.
기업 단에서는 채산성 없는 사업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르노와 얼라이언스를 체결한 닛산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저수익 차종과 해외 공장을 모두 정리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고부가가치 모델에 집중했다. 전자 산업에서는 도시바가 사업부를 매각하여 원전과 반도체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으며(당시 매각한 메모리 사업부는 현재의 키옥시아가 되었다) 히타치는 가전/전자기기 사업부를 매각하고 전력/인프라/IT 등에 집중했다.
NKK와 가와사키 제철이 합병한 JFE 홀딩스도 부가가치가 낮은 철강 제품은 대폭 축소하고 특수강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였다. 위와 같은 사례를 나열하면 끝도 없을 만큼 대다수의 산업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다. 수익성이 낮아진 부문은 매각하고, 첨단소재나 IT 같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여긴 사업에 집중한 것이다. 물론 이는 모든 기업들이 항상 하는 말이긴 하나, 제조업 패권이 약화되고 국가가 저성장으로 진입하는 때에 모두가 같은 일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시로 든 기업들의 경우 대기업이었기에 사업부나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는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경쟁에서 도태된 기업은 자연스레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고, 미래 산업에 초점을 맞춰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에 성공한 기업만이 살아남게 된다. 결론적으로, 기업 파산과 M&A 건수 모두 당시를 기점으로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한국 매크로 톺아보기(현재)
서론에서 언급했지만, 상황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은 이미 저성장에 진입했다. 일본의 1995년 즈음과 유사하다. 경제학적으로 잠재성장률은 한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한다. 이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는 노동, 자본, 총요소생산성(기술)이다.
0.7명대의 유례없는 저출산과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현 상황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가져오고 있고, 이는 노동에 치명적이다. 또한, 부동산에 집중된 80%의 가계 자산과 해외로 향하는 기업의 투자는 국내 자본 축적에도 부정적이다. 총요소생산성 역시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미국을 1로 봤을 때 한국은 0.6 수준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1%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당연히 실질성장률도 마찬가지다. 3% 내외의 성장이 당연했던 10년 전과 달리 이제 2% 성장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락 속도는 빨라지고 있고, 5년 뒤의 미래만 보더라도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함께 1% 성장이 당연한 시기가 올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성장 키워드는 수출과 제조업이었다. 1964년 세계 수출 규모 83위였던 한국은 2023년 8위까지 성장했다. 싸게 많이 팔아넘기는 것만이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성장을 보여왔다. 각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있는 기업도 많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도, 스마트폰 세계 1위도, 조선업 세계 1위도 한국에 있다. 수출이 GDP에 기여하는 비율은 1965년 10%대에서 2020년 40%대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18년 한국의 국가별 수출 비중은 중국이 26.8%, 미국이 12.0%였으나 2024년에는 각각 19.5%와 18.7%로 간격이 상당히 좁아졌다.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이 미/중으로 양분됨에 따른 결과다. 한국에게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며 제조업 패권의 약화를 늦춰주고 있다는 것이고, 단점으로는 중국에 기대온 그간의 성장 공식이 이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과가 무역수지로 드러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중국 향 수출에 기반한 매우 높은 수준의 무역흑자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2022년 즈음부터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회복된 모습을 보이긴 하나,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환율 수준에서 기록한 결과이기에 안심할 수는 없다.
10년 만의 대규모 무역적자는 경제적으로 무언가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감안해도 현 상황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미/중 분쟁의 영향, 공급망 불안 등 거시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고 이는 일시적이지 않다. 그리고 또 살펴봐야 할 부분은 수출 경쟁력, 한국의 성장을 이끈 제조업이다.
일본 사례에서 본 것처럼 제조업 패권은 20년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 그리고 1990년 이후 제조업 패권을 쥐어온 한국은 패권을 내려놓고 있다. 국내 설비투자를 멈추고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이는 그간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한국은 장치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장치산업이란 거대한 설비나 장치를 필요로 하는 공업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제지산업 등이 장치산업에 해당한다. 물론 장치산업 내에서도 저부가가치 제품보다는 중간 수준 이상의 기술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지만, 장치산업의 본질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인력이 필요한 장치산업이 중심이기에 제조업 패권 약화는 더욱 확정된 미래다.
20년 만에 호황을 맞은 조선사들은 인력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 그리고 2차전지와 같이 미래 먹거리로 여긴 산업은 중국에 밀리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은 무섭게 치고 올라와 철강,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기존 주력 산업들을 잠식했다. 결국 경쟁력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물론 플라자·루브르 합의, 극심한 버블, 혹은 금융위기와 같은 큰 이벤트는 없지만 고금리가 문제점을 드러나게 하고 있다. 결국 일본 기업들이 해온 것처럼 한국의 기업들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 선택과 집중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변화하는 현재 상황과 변화의 중심에서 PE는 어떤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지까지 살펴보자.
한국의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
삼성은 이재용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오른 후 2014~2017년 이미 한 차례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특히 한화에게 매각한 4개사는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주요 계열사를 패키지로 매각한 건이기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방산 기업인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와 화학 기업인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1조 9천억원에 매각했고, 그 후에는 다른 화학 계열 3개사를 3조원에 롯데에 매각했다. 또 프린터, 카메라 사업에서 손을 떼며 사업 구조를 전자, 금융, 바이오, 건설/중공업으로 단순화했다.
그리고 ‘삼성 위기설’이 제기된 지금, 다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AI 시대를 맞이했지만 HBM 기술력 부족으로 SK하이닉스에게 물량을 모두 내주고 있고, 성장해야 했던 파운드리 사업은 TSMC에게 밀리고 있으니 그룹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24년 9월에는 수익성 문제로 삼성SDI의 편광필름 사업부를 1조 1천억원에 중국 우시헝신에 매각했고, DS부문의 LED 사업부에서 철수할 것임을 밝혔다. 이유는 낮은 수익성과 낮은 기술 난이도였다. 결국 일본의 기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첨단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LED 사업부의 직원을 반도체 라인에 재배치하겠다는 계획 또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를 나타낸다.
SK의 사업구조 재편은 코로나 이후 매우 공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SK는 대기업 그룹 사이에서도 계열사가 매우 많은 편이다. 삼성, 현대, LG 등이 모두 6~70개 수준인 데에 비해 SK의 국내 계열사는 200개가 넘는다. 그만큼 영위하는 사업도 다양하며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많은 계열사를 정리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Case Study를 통해 알아보자.
또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은 롯데다. 2024년 말에는 여러 매체를 통해 롯데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롯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직후 보인 모든 행보는 해명을 반박하고 있다. 임원을 22% 줄였고 여러 계열사에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삼성, SK, LG 등 많은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 감축에 나서긴 했지만 롯데의 강도가 가장 강하다.
일단 롯데헬스케어를 청산했고, 롯데면세점은 따이공과의 거래를 중단하며 몸집을 줄이고 있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 같이 성과가 저조한 점포들을 매각 및 폐업 중이고,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롯데케미칼의 상황은 많이 심각한데, 롯데 그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내놓았다.
롯데는 다른 계열사들 매각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빅딜이 이루어졌는데, 지난 12월 롯데렌탈을 1조 6천억원에 어피니티에 매각했다. 어피니티는 이미 렌터카 업계 2위인 SK렌터카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1위 사업자인 롯데렌탈을 인수함으로써 시장을 장악하고, 볼트온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했을 것이다.
롯데카드도 매각에 나섰고, 호텔롯데와 롯데캐피탈 같이 비주류 계열사로 여겨지는 계열사를 모두 시장에 내놓았다. 사실상 롯데의 거의 모든 계열사들이 잠재적 매각 대상으로 보인다. 물론 고금리로 인한 유동성 악화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맞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 한국의 매크로 상황을 고려할 때 본질적인 경쟁력 약화의 영향도 크다. 결국 다가올 미래를 높은 금리가 당겼다고 볼 수 있다.
일현한미 Case Study 1) SK 리밸런싱은 한앤컴퍼니가 책임집니다
고금리가 트리거가 되어 구조조정을 시작한 그룹이 롯데라면, 과거부터 꾸준히 선택과 집중을 해나가고 있는 그룹은 SK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2024년 반기 기준 삼성은 63개, 현대차는 70개, LG는 60개의 국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데에 반해 SK는 21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만큼 떨어내야 할 사업 또한 많기 때문이다. 상장한 국내 계열사만 20개가 넘는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업을 다각화한 것 같지만, 사실 SK는 앞에서 언급한 성장 방식대로 착실하게 성장해온 그룹이다. SK그룹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SK그룹의 모태는 작은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선경직물’이었다. 당시 성장한 다른 기업들이 그러했듯 값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1970년대 섬유산업 호황기에 수출을 확대해 국내 대표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정부 주도 수출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저부가가치 사업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오늘날 SK그룹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 대기업의 전형적인 과거 성공 방식이며, 현재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최종건 회장의 별세로 경영권을 이어받은 최종현 회장의 선택은 에너지/화학이었다. 이에 1980년 선경은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게 된다(현 ‘SK이노베이션’). 이는 재계의 판도를 바꾼 선택이었는데, 재계 10위 안팎을 맴돌던 선경은 해당 인수건으로 재계 5위로 올라서게 된다. 그 후 SK그룹을 현재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두번째 중요한 선택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였다(현 ‘SK텔레콤’).
최종현 회장의 선견지명이 어디까지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은 국민 생활에 필수적이면서도(안정적인 수요) 규제로 인한 과점(공급 제한)을 누리는, SK그룹 최고의 캐시카우가 되었다. 이는 사업을 다각화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초석을 마련해주었다.
다음으로 후계자가 된 최태원 회장의 선택은 반도체와 바이오였다. 2011년에는 신약을 개발하는 SK바이오팜을 출범했고, 2012년에는 SK텔레콤은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작하여 설립한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했다(현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은 매우 안정적인 캐시카우이긴 하나 성장성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그룹의 성장을 위해서 선택한 사업이 반도체와 바이오였던 것이다. SK하이닉스는 10년 만에 시가총액 150조원 이상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됨으로써 SK그룹 그 자체가 되었다.
SK그룹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SK그룹은 기존 산업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섬유에서 화학으로, 화학에서 반도체와 바이오로 부가가치를 높여갔고 이른바 당대의 ‘첨단산업’이라 여겨지는 산업으로의 선택과 집중을 반복해왔다. 제조업 패권을 잃고 신성장 동력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SK그룹의 현재는 어떨까?
SK는 미래의 핵심 사업으로 4가지를 선택했다. 첨단소재, 그린(친환경), 바이오, 디지털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고성능 반도체와 반도체·전기차 소재(첨단소재), 전기차 배터리와 재생에너지(그린), AI와 데이터센터(디지털), 신약 개발 및 CDMO(바이오)를 중장기적 관점의 사업 포트폴리오로 내세웠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이 있는 첨단소재와 디지털 분야는 기존 영업으로 추가 투자금을 충당할 수 있지만 그린과 바이오, AI에서는 다르다. 아직 실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분야이면서, 투자는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표적으로 배터리에서 SK온이 그렇다.
영업으로는 계속해서 적자가 나고 있으면서 투자는 10조원 이상이 필요한 모습이다. 이에 FCFF는 11조원 이상, 거의 자본만큼 적자가 나고 있다. 기업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계속기업가정에도 불확실성이 있는 듯하다. 그룹 측면에서 봐도 상황이 심각한데, SK그룹의 가장 알짜 계열사인 SK하이닉스도 FCFF는 2024년 3분기 LTM 기준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고, SK텔레콤의 FCFF는 2조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차전지는 상황이 그야말로 암울하다. 전기차 시장에 캐즘이 닥쳤다는 이야기는 퍼진지 오래고, 중국의 물량 공세로 한국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은 제조업에서 한국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제조업 패권의 약화). ‘여기까지만’ 보면 최태원 회장의 배터리 분야 진출은 잘못된 선택인 듯하다.
SK그룹은 작금의 상황을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통해 파훼하려고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배터리·바이오 분야의 적자 계열사에 알짜 계열사를 붙여주거나, 비핵심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등이지만 PE의 기회는 후자에서 나온다.
사실 이러한 리밸런싱은 SK가 본격적으로 배터리 분야에 진출한 2018년부터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 최대 규모 PEF를 결성한 한앤컴퍼니가 SK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고 있다. 7년 간 이루어진 거래만 7건이며 총 거래 규모만 8조원에 달한다(케이카, SK디앤디, SK해운, SK케미칼 바이오에너지 사업부, SKC 필름 사업부, SK엔펄스 파인세라믹 사업부, SK스페셜티). 한앤컴퍼니가 어떤 thesis를 가지고 SK와 계속해서 거래를 이어가는지 가장 최근 사례인 SK스페셜티 Case를 통해 알아보자.
Deal Structure
SK스페셜티의 전신은 SK머티리얼즈로, SK가 2015년 OCI로부터 인수하여 SK그룹으로 편입했다. 한앤컴퍼니가 인수하기 전 주주는 SK 100%였고, 한앤컴퍼니는 2024년 12월 지분 85%를 2조 7천억원에 인수했다. 인수금융 규모는 1조 3~4천억원 수준이다.
Investment thesis
SK스페셜티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제조 등에 사용되는 특수가스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특수가스 중에서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특히 많이 사용되는 NF3와 WF6 분야에서 전세계 MS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소재이기에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수요는 꾸준하지만 생산 장비, 배관, 미드스트림, 다운스트림 성격을 모두 갖춰야 하며 인허가도 통과해야 하기에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는 특징이 있다. 범용으로 사용되는 산업가스 시장의 경우 글로벌 시장을 단 3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을 정도이다. 특수가스도 품목별로 3-6개 업체만이 경쟁하고 있다.
두번째 특징은 기본적으로 계약이 장기계약이라는 점이다. 가장 짧은 계약 기간이 1년이고, 공급 방식에 따라 계약 기간이 15년을 넘어가기도 한다. 공급을 위해서는 파이프라인을 연결하거나 고객사 주변에 공장을 짓는 등 사전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SK하이닉스로 나가는 캡티브 물량까지 있다. 심지어 가격은 원재료 값에 연동되어 일정 마진을 보장해주는 구조이기에 gpm도 일정하다.
요약하자면, 수요는 안정적이고 공급은 제한되어있다. 그리고 계약기간도 길고 gpm도 일정해 더더욱 안정적이다. PE업 소개에서 언급한 것처럼, PE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비즈니스를 가장 선호한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면서 공격적으로 딜 구조를 짤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SK스페셜티와 같은 특수가스 기업은 너무나 매력적인 매물이다.
그래서인지 멀티플은 꽤나 높은 편이다. 2023년 실적 기준으로 EV/EBITDA 16~17x 수준이며 2024년 들어 실적은 하향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9년 IMM PE가 산업가스 판매 업체인 린데코리아를 인수하여 2023년 지분 30% 매각만으로 원금에 가까운 금액을 회수했는데, 해당 딜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SK스페셜티는 상장사도 아니기에 추가적인 thesis를 알 수는 없다. 추측하기로는 현재 실적 하향세는 일시적이고 맺어질 예정인 공급계약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적의 턴어라운드가 예상되지 않는다면 한앤컴퍼니가 이런 가격으로는 인수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딜로 SK는 3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했다. SK온의 투자금으로 한 분기 정도는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물론 빅딜이라고는 해도 아직 부족하기에 한앤컴퍼니 외에도 어피니티에게 SK렌터카를 매각했고, 어펄마캐피탈과는 SK넥실리스 매각을 협상 중이다.
이처럼 대기업의 사업구조 재편에 따른 매물은 서로에게 윈윈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필요한 현금을 마련할 수 있으니 좋고, PE 입장에서는 알짜 회사를 인수할 수 있으니 좋다.
카브아웃(Carve-out) 딜이란 회사의 여러 사업 중 일부만 떼내어 거래하는 딜을 말한다. 기업이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해온 계열사나 사업부가 매물로 나온 경우 비즈니스모델이 어느정도 검증된 경우가 많기에 PE에게는 항상 뜨거운 딜이 된다. 이른바 ‘알짜’ 회사인 경우가 많으며, 기업이 다른 사업에 집중하느라 투자를 미흡하게 해왔거나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은 경우 PE에게는 알파를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기업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매각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SK의 리밸런싱 매물도 많이 남아있고, 롯데는 매일 구조조정 매물을 내놓고 있다. 또한 CJ제일제당은 바이오 사업부를 매물로 내놓았다. 몸값이 6조원 수준으로 예상되는 ‘역대급’ 딜이다. SK Case에서는 한앤컴퍼니가 기회를 포착한 것으로 보이고, 롯데는 어떨까? 삼성은 어떻고, CJ는 어떨까? LP와 인수금융 기관을 찾으러 뛰어다녀야 할 때다.
일본 매크로 톺아보기에서 잠깐 언급한 내용이 있다. 대기업은 비핵심 계열사나 자산을 매각해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당연히 한국이라고 다를 건 없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체급이 약한 대기업도 위기가 심한 경우 그룹이 와해되기도 한다.
이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에는 이미 기업 파산 건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2024년에는 이를 갱신했다. 물론 기업의 파산은 대출이 어려워지는 경우 이루어지기에 고금리의 영향이 가장 크다. 하지만 과거 고금리 싸이클과 규모가 차원이 다른 것은 구조적 변화가 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투자에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잘되는 기업이 더 잘되는 방향에 베팅하거나, 안되는 기업이 턴어라운드하는 방향에 베팅하는 전략이다. 안되는 기업이 턴어라운드하면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주식투자자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PE는 망해가는 기업을 살릴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고, 기업을 지원할 방법도 많이 알고 있다. 또한, 투자자가 가장 좋아하는 상황은 시장의 오해로 인해 가격이 내재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떨어진 상황이다.
이처럼 부실해진 기업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고 매각하는 펀드를 벌처펀드(Vulture Fund), CRC(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는 IMF 이후 도입되었다가 폐지되었는데, 한 해에 해산한 CRC 조합 평균 IRR이 26%였을 정도로 고수익 비즈니스였다. 2010년대 부실한 한국 기업의 경영권을 공격하러 들어온 해외 펀드에 벌처펀드가 다수 포함되며 유명해졌다.
위대한 투자자로 알려진 하워드 막스의 Oaktree Capital도 벌처 투자로 큰 수익을 본 운용사다. 벌처펀드는 부실기업처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다른 자산군에 투자하기도 하는데, Oaktree의 경우 고수익 채권과 부실채권에 집중했으며 특히 금융위기로 인해 넘쳐난 부실채권에서 큰 수익을 거뒀다. Oaktree는 장기적으로 Net IRR 19%(수수료를 제외한 IRR)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일현한미 Case Study 2) 떨어진 칼날 싸게 사기(캑터스PE-동부제철)
동부제철(현 ‘KG스틸’)은 동부그룹에 속한 철강 기업이었다. 포스코, 현대제철, 세아, 동국제강에 이은 국내 5위였고 한때 세계 최대 규모 전기로 제철 공장도 보유해 경쟁력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제조업 기업들이 그러했듯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위기를 겪었다.
동부제철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계속해서 늘려가던 상황이었고, 이에 따라 금융위기 전에도 200% 내외의 부채비율을 보였으며 차입금과 사채는 자본총계와 비슷할 정도로 많이 쌓인 상황이었다. 이런 때에 금융위기가 터졌으니 버텨낼 여력이 없었다.
부채는 나날이 쌓여갔고, 원래도 저마진 사업인데 이자비용이 늘어나니 순손실은 늘어만 갔다. 재무구조는 점점 악화되었고, 2014년에는 공장 운영 중단에 따른 손상차손을 1조원 이상 인식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가까워진다. 결국 동부제철은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고, 경영권은 동부그룹에서 산업은행으로 넘어가게 된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하며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공장까지 중단한 기업의 운영이 잘 될 리가 없었다. 동부제철의 적자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산업은행은 무상감자와 출자전환만을 반복하며 연명치료를 이어나갔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어차피 받지 못할 부채라면 출자전환을 해서 기업이 살아나길 기다리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금 회수를 위해 동부제철을 인수할 대상을 물색했는데, 3-4년이 지나고 나서야 2019년에 KG그룹과 캑터스PE가 인수자로 나선다.
Deal Structure
2018년 동부제철의 주주구성을 보면 최대주주인 산업은행(39.17%)을 비롯한 농협은행(14.90%), 한국수출입은행(13.58%) 등 채권단 지분이 총 85%였다. 2019년 채권단은 KG스틸·캑터스PE과 경영권 매각을 합의했고, 채권을 6천억원만큼 출자전환하고 8.5:1로 무상감자까지 실시했다. 그 후 KG스틸은 주당 5천원에 2천억원, 캑터스PE는 1,600억원을 유상증자를 통해 투입하는 형태로 경영권을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은 3천억원을 출자해 지분 13.28%를, KG그룹·캑터스PE는 3,600억원을 투자해 지분 71.96%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채권단은 잔여채권에 대해 2025년까지 상환 기간을 유예해주었다.
Investment Thesis
2019년 반기보고서의 자본잠식 상태에서 출자전환 후 자본총계가 5,700억원이었으니 KG스틸과 캑터스PE는 PBR 0.9x 수준으로 경영권을 가져온 것이었다. 2019년 실적 기준 EV/EBITDA는 15~16x 수준이었다. 물론 부실기업을 실적만 보고 인수했을 리는 없다. 부실기업 인수는 운영을 정상화해서 바닥에서 남들만큼 평가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가치를 올리는 것이 기본 thesis이기 때문이다.
일단 당시 동부제철은 내재가치에 비해 많이 할인돼있을 확률이 높았다. 채권단은 첫 출자전환 후인 2016년부터 3년 간 계속해서 매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이다. 장사의 기본이다. 안 팔리는 물건은 구매자가 우위에 서고, 잘 팔리는 물건은 판매자가 우위에 선다. 채권단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 KG컨소시엄은 분명 우위에 섰을 것이고, 이는 이미 저렴해진 기업을 더 저렴하게 인수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또한 KG그룹은 KG케미칼을 시작으로 여러 성공적인 M&A를 통해 성장해온 그룹이다. 제조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도 많으며 이미 철강 제조도 하고 있었기에 자금만 있다면 충분히 동부제철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캑터스PE는 이런 노하우가 있는 KG그룹에게 운영을 맡기고 함께할 수 있기에 가격만 맞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실 KG그룹은 캑터스PE의 2대주주이다. 캑터스PE의 정한설 대표가 KG그룹 곽재선 회장과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해왔기 때문이. KG그룹 회장의 장남이 캑터스PE에서 사내이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실제로 동부제철 이후에도 쌍용자동차 인수까지 함께했으며 성사되진 않았지만 최근 초록뱀미디어 인수전에도 함께 참여했다.
더군다나 정한설 대표는 구조조정 딜에 경험이 많았다. 서울대학교 항공운항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MBA까지 취득한 후 삼성생명에서 해외투자를 맡으며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그 후 IMM인베스트먼트와 스틱인베스트먼트를 거쳤다. 스틱인베스트먼트에서 집중한 부분은 2000년대 초반 IT버블이 터지고 상황이 악화된 기업들을 싸게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첫 펀드에서 IRR 26%를 기록하며 좋은 성과를 보였다. 2010년대에는 한화그룹이 구조조정에 따라 매각한 한화S&C 딜에 참여하기도 했다. 상황이 악화된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끌어올리는지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Operational Transformation
저마진 사업으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동부제철은 인수된 후 마진도 낮고 시장 MS도 낮은 강관 사업에서는 완전히 철수했다. 그리고 철강 제품 중에서도 마진이 높고 기업 자체 경쟁력이 있는 컬러강판과 같은 고마진 제품에 집중하기 위해 인수 직후 65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 오랜 기간 적자만 지속해온 만큼, 집중하지 못할 분야라면 잘라내고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었다.
투입한 자금으로 부채를 상환해 이자비용을 줄이고 KG그룹의 노하우를 이용해서는 물류비 등 비용 절감에 성공해 인수 다음해인 2020년 11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원재료값 상승은 P 상승으로 인한 외형 성장과 P-C 스프레드의 확대를 가져왔고 2021년과 2022년의 놀라운 실적 상승을 가능케 했다. 2019년에 비해 EBITDA는 4배, 영업이익은 10배로 확대되는 기염을 토한다.
이에 따라 KG그룹·캑터스PE의 인수 이후 주가도 4배 가까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KG그룹은 SI로서 참여한 것이기에 아직 최대주주로 남아있고, 캑터스PE는 2022년부터 지분을 꾸준히 매각해왔다. 배당까지 고려하면 2023년까지 매각한 지분만으로 이미 원금 회수는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인수금융 여부 같은 Deal Structure가 자세히 공개되진 않았기에 정확한 수익률을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동부제철 딜은 기업의 펀더멘탈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구조조정 딜의 모범 Case라 할 수 있다. 고금리가 앞당긴 구조적인 문제는 계속해서 드러날 것이고, 20여년 전의 CRC 비즈니스를 다시 공부해볼 때다.
저출산과 고령화에서의 시사점(필연적인 승계 문제)
얼마전 일본의 출산율이 반등하다가 다시 최저점을 갱신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수치를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한국의 2배에 가까운 1.2명대의 출산율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0.6명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말이다. 어찌 됐든 이제 두 나라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저출산으로 동일하다. 저성장이 불러온 산업구조의 변화 말고도 학습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기업의 승계 문제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영자 고령화와 중소기업 후계자 부재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일본 중소기업 경영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의 연령대는 2005년 50-54세에서 2015년 65-69세로 옮겨갔고,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5년에 70세를 넘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전체의 64%를 차지할 것이라 추산하였다. 이는 흑자기업이 폐업하는 일이 반복되며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왔다.
그렇다면 왜 일찍이 승계를 하지 않을까? 주요 원인으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자녀가 승계를 원하지 않거나, 상속세율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고령의 경영자가 오랜 기간 사업을 이어온 기업은 소위 ‘고루한’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전망이 밝은 성장 산업에 속해서 큰 꿈을 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누구나 경영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경영자의 자녀라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식보다는 현금을 상속받는 편이 낫다.
상속세율은 당연히 승계의 걸림돌이 된다. 주식투자자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가장 심하게 느끼는 경우는 최대주주가 상속을 앞둔 때다. 상속을 앞둔 최대주주는 보통 주주환원을 줄이고, 기업의 안 좋은 면을 부각하는 등 지분가치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 오죽하면 승계 전문 사외이사가 있을 정도다. 최대주주 일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데, 매각할 수도 없는 지분을 상속받아놓고 절반에 달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최대주주 일가에게는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상속세율이 높은 일본과 한국에서 특히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승계가 안된다면 당연히 지분을 누군가에게 넘겨야 한다. 그리고 일본의 중소기업 M&A 건수는 2014년 308건에서 2022년 5,717건으로 19배 증가했다. 또한 일본 중소기업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 70대 이상 경영자의 M&A 목적 중 67.5%가 사업승계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지분 매각이 일본의 경영자들이 승계가 안될 때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며, 일본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의 M&A를 위한 대책을 다방면으로 마련해놓았기 때문이다.
대형 금융기관들은 승계 문제를 겪는 중소기업을 타겟하는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고, 중소기업 M&A 전문중개기관이 생겨나기도 했다. 니혼M&A센터, Strike, M&A캐피탈파트너스 3사가 가장 유명한데, 이들의 계약 건수는 승계 문제가 불거진 2012년 232건에서 2017년 682건으로 3배 증가했다. AI가 인수자를 찾아주는 시스템까지 도입해 계약 건수를 빠르게 늘리고 있는 M&A종합연구소도 그 중 하나다. 2019년에는 일본 최초로 Yamaguchi 지방은행이 서치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서치펀드(Search fund)는 소수의 서쳐(Searcher)가 규모가 작은 기업을 찾아 인수하고 경영하는 펀드다. 최대 수백억원 규모의 기업만을 타겟하는 초소형 PE라고 볼 수 있다. 사업을 오래 영위했지만 효율성을 제고할 여지가 많은 기업을 선호하기에 승계 문제를 겪는 중소기업은 이들에게 적합한 대상이다. 한국에는 아직 제대로 된 서치펀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인구구조는 당연하고 상속세율까지 비슷한 일본의 승계 문제는 한국에게 좋은 참고서가 된다. 미국 주주자본주의 Case에서 소개한 고려아연 딜처럼 승계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해 PE가 침투할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이번 글처럼 경영자가 승계를 포기해 기회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미 한국에도 승계 실패로 인한 M&A Case가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중 52.6%가 폐업 또는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일현한미 Case Study 3) 미리 대비하는 그들, 리버티랩스&제이원PE
이번에는 투자 Case가 아닌 승계 문제에 대한 thesis를 가진 기관을 소개하려 한다. 리버티랩스와 제이원PE다.
리버티랩스는 2022년 12월 정재문 대표가 ‘승계 문제가 있는 중소기업을 인수하여 직원소유기업으로 전환’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은퇴하는 사업주의 경영권을 M&A를 통해 바로 가져오거나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인수 후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전체 지분의 80%를 직원들에게 점진적으로 분배하는 한국에서는 특이한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있다.
리버티랩스는 인수 후 지분 5~10%를 임직원에게 무상으로 증여한다. 그 후 인수된 기업은 매년 이익의 50%는 배당하고 50%는 리버티랩스 주식을 구매해 소각하도록 한다. 이는 직원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하고, 기업의 이익이 다른 중소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구조는 리버티랩스가 타겟하는 기업이 승계 문제를 겪는 기업으로서 큰 금액의 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재문 대표는 GP가 아니라 LP 사이드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인물인데, 한국 중소기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발 빠르게 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이 놀랍다.
제이원PE는 2024년 8월 이중호 대표가 소규모 사모투자회사를 인수해 설립한 PE로, 중소기업의 승계와 자산 이전을 고민하는 최대주주들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름은 PE지만 최대주주와 적절한 인수자를 연결해주는 M&A 중개기관의 역할을 한다. 팀 구성이 특이한데, 이중호 대표는 하나증권 파생상품 애널리스트였고 팀의 다른 멤버는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이다. 일반적인 중소 PE와는 팀 구성부터 다르다.
이중호 대표는 “국내에서는 자녀 승계 형태가 주류이지만,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M&A 방식을 찾는 수요가 크다"면서 "많은 금융 기관들이 가업 승계 수요에 대응한 전담팀을 만들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 지원정책도 확대될 것"이라고 하며 일본의 현재를 보고 한국의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제이원PE의 thesis를 밝혔다.
이처럼 발 빠른 이들은 한국의 미래를 보고 이미 승계 문제 해결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내일 첫 업무로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연령과 가족 관계를 엑셀에 정리해보는건 어떨까? 누가 아는가? 그들이 말못할 고민을 안고 있을지 말이다. 금융은 자본을 효율적인 곳으로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연령이 야기할 사회의 비효율성을 해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