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의 Growth Capital 투자(2)
드래그 얼롱, 태그 얼롱, 풋옵션...주주간계약. 밀리의서재, 카카오모빌리티, 11번가, 유비케어, 에어퍼스트 Case Study.
이번글은 지난글의 연장선 상에서 진행됩니다. 주주간계약, 그로쓰캐피탈에서의 경영 참여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주주간계약을 통한 옵션부 투자
투자 상품의 관점에서 옵션은 ‘특정 상품을 정해진 시점에 매수하거나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반면, 계약 관계나 상거래에서 옵션은 ‘특정 상황에서 자의적으로 선택 가능한 조건, 혹은 그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해석된다. PE의 거래 구조(Deal Structure)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 적합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메자닌도 옵션적 성격을 가진 금융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상환청구권은 발행자가 가지고 있다면 콜옵션, 투자자가 가지고 있다면 풋옵션이 되며, 전환청구권은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전글에서 언급했지만, 단순 소수지분 투자는 한계가 많다. 먼저 경영권이 없기에 IPO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엑싯이 어렵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 된다. 또한, 기업의 경영권이 최대주주에게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제한적이기도 하다. 최대주주가 다른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PE는 안전 장치를 생각하게 되고, 그 중 하나가 메자닌이었다. 당연히 메자닌 외에도 PE가 그로쓰캐피탈 투자 시 사용하는 안전 장치는 많고, 주주간계약 시에 옵션을 설정하는 방법이 흔히 사용된다.
주주간계약(SHA, ShareHolders’ Agreement)은 주주들이 회사의 의사결정, 주식 처분 등에 관하여 서로 특정 조건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2개 이상의 법인이 파트너쉽을 맺어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 공동 창업자가 회사를 창업하는 경우에도 사용되고 투자자가 기업에 투자할 때도 사용된다.
이번글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PE가 그로쓰캐피탈 투자를 진행하며 최대주주와 맺는 계약으로 PE가 수월하게 엑싯하기 위해 설정하는 옵션이지만, 실제로 주주간계약에는 이사회 참여 여부, 의결권 행사 제한 등 기업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조항 또한 다양하게 포함된다.
풋옵션(Put Option): 최대주주나 기업에게 보유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 기업이 풋옵션 행사 상대방일 경우 기업이 의무를 지는 것이므로 풋옵션이 부채로 계상되어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줌.
드래그 얼롱(Drag-along, 동반매도청구권): 특정 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 다른 주주에게 함께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 특정 주주는 최대주주가 될 수도, 소수주주가 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소수주주.
태그 얼롱(Tag-along, 동반매도권):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매각할 때 소수주주가 같은 조건으로 자신의 보유 지분을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
드래그 앤 콜(Drag and Call): 드래그 얼롱을 가진 소수주주의 지분에 대해 최대주주에게 콜옵션을 부여. 드래그 얼롱 조항만 있다면 최대주주는 언제나 경영권을 잃을 위험이 있음. 이에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도입.
지난글에서 메자닌을 투자한 PEF에게 수익률을 보장해줄 때 특정 조건이 필요했던 것처럼 위의 옵션을 항상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IPO 같은 특정 조건이 만족되지 않았을 때 행사 가능하며, IPO를 했더라도 PEF가 특정 수익률 이상을 거두기 힘들면 행사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ROFR(Right Of First Refusal, 우선매수권), ROFO(Right Of First Offer, 우선제안권) 등이 있으나 위 4개가 최대주주 견제, 또는 엑싯의 수월함 측면에서 가장 어울리는 조항이다. 사례를 보기 전에 특징을 생각해보자.
먼저 풋옵션은 가장 강력한 조항이다. 매각자와 인수자, 가격과 거래 조건이 사전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분을 넘기고 자금을 수취하는 것으로 거래가 종결된다. 최대주주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없다. 풋옵션 행사 가격은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형태이기에 하방을 보장해주며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 다음으로 강력한 조항은 드래그 얼롱이다. 행사되면 최대주주는 지분을 팔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PE가 인수자를 찾고, 딜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IPO 실패가 행사 조건인 경우, IPO에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의미이기에 매각이 어려울 수 있다. 또, 바이아웃 딜에서 인수자는 몇달에 걸쳐 실사를 하고 매각자와 조건을 협상하게 되는데, 기존 최대주주가 드래그 얼롱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매각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추후 알아보자.
드래그앤콜은 최대주주가 콜옵션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니 소수주주 입장에서는 이득이 되는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 드래그앤콜에서 콜옵션은 행사될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최대주주 입장에서 경영권 포기는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사실상 드래그 얼롱의 콜옵션을 업계에서는 풋옵션과 유사하게 바라봤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태그 얼롱은 가장 강제성이 없는 조항이다. 기본적으로 행사 조건이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이기 때문이다. 매각 전까지는 소수주주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다.
또, 드래그 얼롱과 태그 얼롱의 강력한 장점 중 하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적용된 가격에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영권 지분은 기업의 의사결정과 현금흐름을 통제할 수 있어 일반 지분보다 20~100%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며, 이를 경영권 프리미엄이라 한다. 투자 시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 가격으로 지분을 확보하고, 매각 시에는 프리미엄이 포함된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가격 차익(아비트라지)을 창출할 수 있다.
메자닌은 옵션의 행사 상대방이 기업이기에 재무제표에 조건이 공시된다. 이는 제3자도 거래 구조를 파악하기 용이하게 한다. 하지만 주주간계약 상에 나타나는 옵션부 투자의 경우, 피투자기업을 대상으로 한 풋옵션(기업에게 의무가 있는 경우)이 아니라면 말 그대로 ‘주주간’계약, 사적 계약이기에 거래 구조가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NDA(Non-Disclosure Agreement, 비밀유지계약)가 설정된 경우가 대다수기에 제3자가 거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언론에도 쉽사리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글의 투자 사례는 거래 구조가 언론을 통해서 대략적으로 드러난 사례이며,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더 복잡한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주주간계약의 공개 여부가 이슈가 된 사례가 하이브다. 스틱인베스트먼트, 이스톤PE 등 PE는 하이브가 IPO를 하기 전인 2018년과 2019년 하이브에 약 2,300억원을 투자하며 방시혁 의장과 주주간계약을 맺었다.
언론에 밝혀진 주주간계약 첫 번째는 풋옵션으로 기한 내 IPO를 하지 못하면 방시혁 의장이 PEF 지분을 사와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PEF가 드래그 얼롱과 태그 얼롱을 모두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항이 핵심인데, 방시혁 의장이 IPO 이후 PEF가 하이브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의 30%를 수취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이브는 2020년 IPO에 성공했고, 주주간계약의 마지막 사항으로 방시혁 의장은 4천억원 내외를 수취했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주주간계약은 사적 계약으로서 공시 의무가 발생하지 않지만 최대주주가 IPO를 통해 사적으로 막대한 수익금을 챙길 수 있는 조항조차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었고, 사실상 대주주가 보호예수 기간을 회피해 수익을 올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무엇이 맞는지는 독자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Growth Capital Case Study 3) 밀리의서재 IPO의 속사정
밀리의서재는 웅진씽크빅 대표 출신인 서영택 대표가 2016년 설립한 한국 e-book의 대표주자다. 구독료를 내면 플랫폼에 등록된 전자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데, 책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종이책을 구매하기 어려워진 현시대에 독서광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고 있다. 이에 회원수는 2018년 11만명에서 2024년 85만명으로, 6년만에 7배 이상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 국내 e-book 시장의 압도적인 1위 사업자다.
실적 역시 안정적으로 성장 중이다. 2019년에서 2023년 4년 만에 5배의 매출 성장을 보이며 흑자로 전환하였고, 2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을 보여주며 1위 플레이어의 독점력을 입증하고 있다.
2021년 9월 창업자인 서영택 대표는 지분 일부를 지니뮤직에 매각하며 최대주주 자리를 내려놓았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매입한 지니뮤직은 지분 38.6%를 확보하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서영택 대표, 기존 FI들은 지니뮤직과 주주간계약을 맺게 되었다. 참고로 FI는 대부분 그로쓰캐피탈 투자를 병행하는 VC였다.
FI(Financial Investor, 재무적 투자자)는 PE, VC와 같이 투자 후 엑싯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투자자이다. 반면, SI(Strategic Investor, 전략적 투자자)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 시장 확대, 신사업 발굴 등 사업적인 목적을 가진 투자자이다. 그렇기에 투자 시점부터 예상 수익률을 계산하고 엑싯 플랜을 세우는 FI와 달리 SI는 주로 사업의 방향성을 고려한다.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주주간계약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특정 조건은 대부분의 주주간계약이 그렇듯 IPO였고, 계약일로부터 3년 뒤인 2024년 9월까지 IPO를 추진하지 않을 시 서영택 대표와 FI들은 드래그 얼롱을 행사할 수도, 지니뮤직을 대상으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FI는 밀리의서재의 성장성과 주주간계약으로 인한 하방 안정성을 포인트로 삼아 투자했을 것이다. 반대로 지니뮤직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지니뮤직은 2019~2021년 3년 간 매출이 정체되며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같은 플랫폼 산업이고 구독형 BM을 가진 밀리의서재를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주간계약으로 인해 기한 내 IPO를 추진하지 못하면 지분을 팔아야 하거나 소수주주들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지니뮤직은 밀리의서재를 상장시켜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받았을 느꼈을 것이고, 실제로 인수 직후 밀리의서재 IPO 준비에 돌입하였다. 이에 2022년 밀리의서재는 코스닥 상장 절차에 돌입했으나, 한자릿수의 경쟁률을 보이며 흥행에 실패하고 상장을 철회했다. 기본적으로 IPO는 신규 자본을 유치한다는 뜻이고, 신규 자본 유치를 위해서는 시장이 기업의 매력도를 인정해야 한다. 밀리의서재는 매력도 입증에 실패한 것이었다. 또한 2022년은 전세계적인 고금리로 시장의 투심이 매우 악화된 상황이었다.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금리가 하락기에 들어서고 시장이 우호적으로 변하는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상장 기한이 3년이었기에 지니뮤직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고, 2023년 다시 밀리의서재 IPO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2022년보다 공모주식수도 줄이고, 공모가액도 낮췄다. 결국 밀리의서재는 IPO에 성공했고,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FI들은 두자릿수의 IRR을 기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간계약을 보면 왜 밀리의서재가 우호적인 시장 상황을 기다리지 않고 무리하면서 IPO를 시도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주간계약은 최대주주로 하여금 FI의 엑싯 방안을 마련하도록 압박한다. 드래그 얼롱 조항이 있는 주주간계약을 맺은 사례는 많으나 아직 실제로 드래그 얼롱으로 최대주주가 지분을 강제로 매각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주주간계약이 효과적으로 작용해 많은 경우 FI가 원하는 바를 이뤄왔음을 뜻한다.
Growth Capital Case Study 4) 카카오모빌리티가 매각된다고?
카카오택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길에서 손을 흔들거나 택시회사에 전화해서 콜택시를 부르는 시대가 아니라 핸드폰으로 택시 호출부터 결제까지 가능한 시대이고, 카카오택시는 택시호출 시장에서 94%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기 때문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택시로 가장 잘 알려져있지만 카카오택시, 카카오맵, 카카오대리 등 모빌리티 관련 여러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다. 네비게이션 시장에서는 점유율 12%로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리운전 시장에서는 4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인다.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실적도 안정적으로 성장 중이다. 매출 성장률도 가파르고, 영업권 손상차손으로 인해 순이익은 적자지만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한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성장세가 주춤하는 모습이긴 하나 카카오택시 기준 1,300만명이 넘는 MAU 역시 압도적인 독점력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제는 ‘카카오’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카카오모빌리티 매각 작업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주요 자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를 매각한다는 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매각의 원인을 보려면 201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가 2017년 사업부를 분할해 신설한 법인이다. 설립과 동시에 FI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고, 당시 TPG컨소시엄은 5천억원을 투자했다. 그 외에도 한국투자파트너스, 오릭스PE, 한국투자증권 등이 수천억원의 자금을 투자했으며 4년이 지난 2021년에는 기존 FI들과 칼라일을 포함한 신규FI, 구글을 포함한 SI들이 추가로 수천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TPG(Texas Pacific Group)는 시가총액 $23B, 2024년 3분기 기준 $239B의 AUM을 운용하는 글로벌 7위 PE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PE 중 하나이지만, 일찌감치 한국 기업에 투자해왔다. 심지어 1999년에도 위기에 빠진 제일은행을 인수에 부실을 해소한 바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뿐 아니라 카카오뱅크에도 투자하며 카카오 계열사의 자금 지원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TPG는 TPG Capital, TPG Growth 등 투자처 별로 여러가지의 펀드를 운용하는데, 2007년 TPG Growth 펀드를 통해 카카오모빌리티와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는 우버(UBER)에 투자했다. 우버는 2019년 상장하여 무난한 성장폭을 보여주고 있으니, 정확히 알려진 자료는 없지만 우버 투자를 통해 꽤 괜찮은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파르게 성장한 실적을 바탕으로 2021년 카카오모빌리티는 코스피 상장을 추진했다. 카카오는 이미 카카오뱅크, 카카오게임즈 등 여러 자회사를 상장시킨 경험이 있어, 카카오모빌리티의 상장 추진도 자연스러운 행보로 보였다. 그러나 독점 및 플랫폼 규제, 문어발식 사업 확장 논란 등 부정적 이슈가 잇따라 발생하며 상장은 무산됐다. 실제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2021년 한 해에만 세 차례 국정감사에 출석했으며, 이는 기업 총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상장에 실패했다.
그 후, 언론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2017년 TPG가 카카오모빌리티에 투자할 당시, 5년 이내 IPO를 추진하지 못할 경우 드래그 얼롱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주간계약 조항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7월 카카오모빌리티의 매각설이 보도되었다. 카카오 외 주주들은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카카오는 약 10%대 지분을 매각한 뒤 2대 주주로 남는 방식이었다. 인수자로는 MBK파트너스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카카오모빌리티 임직원과 노조는 PE로의 매각에 강하게 반대했다. 외부에서도 택시 노조와 민주노총이 시위를 벌이는 등 사회적 반발이 이어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혹은 3~4조 원에 달하는 거래 규모의 부담 때문인지 딜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는 VIG파트너스와 골드만삭스가 잠재적 인수자로 언급되고 있으며, 역시나 카카오 지분을 포함해 50% 이상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이다. 다만 거래 규모가 크고, 내부 반발 가능성도 있는 만큼 딜 성사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TPG 입장에서는 반드시 딜을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투자한 지 7년이 넘어 일반적인 엑싯 타이밍을 놓쳤을 뿐 아니라, 주주간계약 조항이 사실이라면 법적 근거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IPO를 다시 추진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MAU 성장세는 둔화되었고, 김범수 의장이 구속되는 등 상황이 2021년보다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국내에서 FI가 드래그 얼롱을 행사해 최대주주 지분까지 매각한 사례는 아직 공개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물론 FI 입장에서 드래그 얼롱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 좋은 상황은 아니다. IPO에 실패했다는 건 기업가치의 상승이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대내외적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뜻이고, 매각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수월하게 진행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나 주주간계약은 단순히 최대주주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하방 안정성과 엑싯의 수월함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TPG가 드래그 얼롱을 행사해 엑싯에 성공할 수 있을지, 국내에서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한 딜이다.
11번가도?
11번가도 카카오모빌리티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다. 2018년 SK플래닛에서 분할하면서 FI로부터 지분 18.2%에 대해 5천억원 가량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주주간계약 사항으로 드래그앤콜이 있었던 것이다. 특정 조건은 카카오모빌리티와 똑같이 5년 내 IPO였지만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짐에 따라 실적이 악화되고 고금리 시대에 대규모 적자를 내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계속해서 상장에 실패했다.
결국 상장 기한이었던 2023년 9월까지도 상장에 실패했고, 먼저 최대주주인 SK스퀘어에게 콜옵션이 부여됐다. FI는 당연히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행사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11번가는 SK 지주 입장에서도 주요 유통 채널 중 하나이고, 재무적으로도 SK스퀘어 매출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자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11월 SK스퀘어는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고, 드래그 얼롱 행사 가능 요건이 충족됐다. 풋옵션의 보장수익률을 5%라고 가정했을 때 6~7천억원을 FI에게 지급해야 하는데, 11번가 경영권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효익이 더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FI는 2023년말부터 경영권 매각을 추진 중이나, 이조차 수월하지 않아 보인다. 5~6천억원에도 딜이 성사되지 않는 것을 보면, 2018년 투자 당시 평가 받았던 3조원에 가까운 기업가치는 80% 이상 하락한 듯하다. 독점 및 분할 상장 논란, 임직원 반발 등이 IPO 실패의 주원인이었던 카카오모빌리티와 달리 11번가는 펀더멘탈의 악화가 주원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주식 시장에서 가치투자를 하는 이들은 기업의 펀더멘탈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결국 주가는 기업의 펀더멘탈에 수렴하는데, 센티멘탈이 주가를 흔들며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PE의 투자 또한 같지 않을까. 메자닌이나 주주간계약, 거래 구조를 통해 하방의 안정성, 엑싯의 수월함, 혹은 수익의 극대화를 꾀할 수는 있지만 결국 기업의 펀더멘탈이 흔들리면 답이 없다. ‘투자’라는 큰 틀에서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Growth Capital Case Study 5) 낙동강 오리알 방지 방안, 태그 얼롱
태그 얼롱은 최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가 되어야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회사를 매각한다는 건 사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사업구조를 재편하거나, 재무구조가 악화된 경우 자회사를 매각하긴 하지만 자주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최대주주가 개인인 경우에도 언제 매각할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최대주주가 PE라면 어떨까?
PE는 엑싯을 해야만 하고, 일반적으로 엑싯까지의 기간을 5년으로 설정한다. 매각 여부가 불확실하고 매각 시점이 예측하기 어려운 다른 경우와 달리, 최대주주가 PE인 경우에는 매각이 확실하며 매각 시점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이 핵심임을 고려할 때 태그 얼롱은 이러한 상황에 진정한 의의를 지닌다.
유비케어는 국내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 시장 1위 사업자로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다. EMR은 환자의 의료 정보를 전자적으로 저장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유비케어의 대표적인 EMR로 ‘의사랑’이 있으며, 전국의 26,000여개 병의원과 약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소개할 케이스의 투자 당시 실적은 다음과 같다.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준다고 보긴 힘들지만 독점적 위치를 바탕으로 의료 시장의 성장과 함께 커가는 모습을 보이며, 마진도 큰 등락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모습이다. 손익계산서만 보더라도, 예측 가능성을 중요시하는 PE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매물이다.
2015년 12월, 스틱인베스트먼트는 SK케미칼로부터 유비케어 지분 44%를 800억원에 인수하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2년 4개월 뒤인 2018년 3월, 유비케어는 카카오인베스트먼트를 대상으로 42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 자금을 활용하여 당해년도에 요양병원 및 한방병원 EMR 시장 1위 사업자였던 브레인헬스케어를 190억원에 인수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주주간계약으로 카카오인베스트먼트에게 태그 얼롱이 있었다는 것이다. 스틱인베스트먼트라는 대형 PE가 최대주주이기에 바이아웃 5년 뒤인 2020년 12월까지는 엑싯을 시도하겠다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태그 얼롱을 주주간계약 사항으로 요구했을 것이다.
실제로 2020년 2월 스틱인베스트먼트는 녹십자헬스케어에게 유비케어를 1,350억원에 매각하였고,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태그 얼롱을 행사해 스틱인베스트먼트와 같은 조건에 지분을 매각할 수 있었다. 배당, 인수금융 여부 등 다른 조건을 제외하고 단순히 투자액과 매각액만을 비교했을 때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2년 2개월 만에 MOIC 1.7x를 달성했다. IRR은 25~30% 수준으로 예상된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에게 태그 얼롱이 없었다면 엑싯의 불확실성이 커졌을 것이다. 녹십자는 기존 의료 플랫폼 사업에서 볼트온의 일환으로 유비케어를 인수한 것인데, 사실 이 경우 유비케어에 대한 경영권, 최대주주 지위를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금사정이 좋지 못하면 스틱인베스트먼트 지분만 인수해도 괜찮았다. 이렇게 되면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장내에서 조금씩 지분을 팔거나, 다른 소수지분 인수자를 찾아야 했다. 최대주주가 FI일 때,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태그 얼롱이 필수다.
또, 태그 얼롱이 있었기에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소수지분을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다. 녹십자의 인수 가격이 주당 7600원 수준이었는데, 공시 당일 유비케어의 주가는 5,700원이었다. 장내에서 지분을 매각하는 것보다 30% 이상 비싸게 매각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처럼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 가격에 소수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것은 드래그 얼롱과 태그 얼롱의 강력한 장점이다.
+) 에어퍼스트
IMM PE는 2019년 산업가스 공급 업체인 에어퍼스트 지분 100%를 1.4조원에 인수하였다. 에어퍼스트가 그 후 급성장하여 IMM PE는 일부 지분 매각을 시도했고, 2023년 블랙록에 지분 30%를 1.1조원에 매각했다. 그리고 이때 주주간계약으로 블랙록은 태그 얼롱을 가지게 되었다.
PE의 엑싯 기간을 생각할 때 IMM PE는 곧 전체 지분 매각에 나설 것이고, 매각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요구한 조항일 것이다. 위 두 사례처럼, 최대주주가 FI일 때 태그 얼롱은 반필수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부록) 그로쓰캐피탈에서의 경영 참여
회계에는 ‘유의적 영향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에 유의적인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지분법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 회계기준에 따르면 유의적 영향력의 기준은 보통 지분율 20%, 이사회 및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 임원 선임 등을 포함한다. 이는 소수지분이라도 기업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회계처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PE의 투자도 예외는 아니다. 이전 글에서 그로스 캐피탈을 바이아웃과 비교하며 경영에서의 배제를 언급했지만, 회계기준처럼 소수지분이더라도 유의미하다면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이사 선임이며, 이는 주주간계약을 통해 설정된다.
예를 들어, BNW인베스트먼트, SK증권PE, 기업은행PE는 2016년 에코프로비엠의 BW를 포함해 약 30% 지분을 600억 원에 인수했다. 이 중 BNW인베스트먼트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 김재욱 대표와 삼성SDI 연구소장 출신 장동식 부사장이 창립한 PE로, 반도체와 2차전지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로 테크 기반 기업에 투자해왔다.
BNW인베스트먼트는 이 같은 인적 자원을 단순히 투자처 발굴에만 사용하지 않았다. 투자 이후 장동식 부사장은 에코프로비엠의 등기이사로 참여해 R&D 전문성 강화를 지원했고, 삼성SDI의 인력을 영입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 결과, 에코프로비엠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으며, BNW인베스트먼트의 IRR은 90%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 참여는 반드시 산업 전문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PE는 재무적 조언을 제공하거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도 투자 기업을 도울 수 있고 IRR을 개선할 수 있다. 즉, 그로쓰캐피탈이나 소수지분 투자라고 해서 경영에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며,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직접 수익률을 높이는 사례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