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는 Value-up의 우군이 될 수 있을까(1)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주제입니다. 50년 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재벌 구조의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바뀌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뀌고 있는 국민의 인식과 법제도에서 PE는 어떤 기회를 포착하고 있을까요?
2~3주 간 낭만투자파트너스에서 화장품 산업의 변화와 PE의 투자를 중심으로 장문의 글을 작성하느라 뉴스레터를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뉴스레터를 떠나있던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 10/17~11/6로 훈련소 일정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따라서 10/16을 마지막 발행으로 11월 중순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을 보며 작년 초 에스엠 사태보다 더 큰 설렘(?)을 느껴 작성한 글입니다. 하지만 아직 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분쟁이 끝난 후 정리하며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형식으로 작성하고 싶어 두세 편으로 나눠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차
코리아 디스카운트
PE의 역할론
2-1. 미국(주주 자본주의) Case Study - KKR의 Safeway 인수
2-2. 일본(이해관계자 자본주의) Case Study
결론
3-1. 한국 Case Study) 쩐의 전쟁은 시작됐다.
3-2. 상장사 예시
코리아 디스카운트
“야구를 못하는 만큼만 지고 싶지,
멀리서 이동하느라 피곤해서 지는 경기는 좀 없어야겠죠.”
- 드라마 ‘스토브리그’ 中 -
실력 외의 문제로 패배하는 건 억울하다. 한국 주식 시장은 실적 외의 문제로 항상 패배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너무나 유명한 단어지만 글로 작성하려 하는 이유는 최근 판도가 바뀌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 시장도 ‘실적이 나쁜 만큼만 안 오르고 싶지,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안 오르는 건 억울하다.’
2024년은 심각성을 더더욱 느끼는 해이면서,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는 해이기도 하다. 일단 주가만 보자면 처참한 건 사실이다. MSCI World Index도 YTD로 20% 가까이 상승했는데 한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오르지 못한 수준을 넘어 YTD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조롱을 받던 일본의 NIKKEI도 20% 상승했고, 심지어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져있던 중국의 SHANGHAI도 며칠 전 경기 부양책 발표와 함께 상승했다.
원인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만으로 치부하기는 과한 것도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주가에는 기술력과 국제 경기가, 이차전지 주가에는 전기차 판매량의 역성장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재용 회장은 10년 전 지배구조 개편으로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고, 두산 그룹은 같은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을 하고 있다.
2024년 초 정부는 밸류업 방안을 발표했다. 의무보다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식이기에 아직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주주환원과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금융주는 주가가 두 배 이상 오르기도 하였다. 또한 두산 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두산밥캣 방지법’도 발의된 상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ESG의 G(Governance) 문제로 인한 주주보호 미흡을 꼽곤 한다. 왜 주주보호에 미흡하냐고 묻는다면 이해관계 불일치, 상속세, 배당 종합과세 등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다. 당연히 조세 제도에 문제가 있음에도 공감하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음에 공감한다. 그러나 필자는 근간에는 한국의 문화와 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일궈낸 국가다. 국민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6~70년대는 국가 성장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고, 이 중심에는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같은 강력한 리더와 노동력이 존재했다. 재벌집단이 커야 국가가 살고, 국민이 사는 구조였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재벌집단을 밀어주는 구조가 된 것이다. 재벌을 건드린다는 건 국가 성장을 저해하는 행동이라는 합의점이 이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은 왕조, 관료에 대한 인식이 강한 국가 중 하나다. 국가의 주인은 당연히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왕’의 역할을 하고, 주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문화와 인식은 당연히 기업에도 적용되어 ‘주주’보다는 ‘회장’, ‘대표’가 기업의 주인이고 의사결정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해왔다. 삼성물산, 삼성생명보험을 통해 가진 주식을 합쳐도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 회장의 지분은 채 4%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공개된 논문도 많고 전문가분들도 많기에 다음 KCGI 강성부 대표의 영상을 확인 바란다.
개선방안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기형적인 상속 및 증여세 구조 개선
배당 분리과세
이사회 독립성 강화
이사 신의성일의무 강화
일감 몰아주기, 부당합병 등 규제
자사주 의무 소각
한국은 DCF(Discounted Cash Flow, 현금흐름할인법)가 통하지 않는 시장이라고들 한다. DCF는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값, 즉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이 주주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valuation 기법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업이 벌어들인 현금흐름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의 형태로 주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부에 유보되거나 비핵심자산을 매입하는 데에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자산의 규모가 커지게 되고 ROA, ROE 등 수익성 지표를 낮춘다. DDM(Discount Dividend Model), RIM(Residual Income Model) 등 다른 절대가치평가 기법에서도 기업가치는 낮게 평가되고 멀티플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더군다나 자사주는 매입한 후 소각하는 것이 당연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자사주는 경영권 분쟁에서 key로 쓰이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재무관리에서 주식수는 자사주를 제외하고 산출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한국 시장은 자사주를 주식수에 포함하여 계산한다.
즉, 한국에서 기업의 이익과 현금흐름은 대주주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대주주의 승계를 돕고, 대주주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위해 사용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히려 효율적 시장 가설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코스피 상장사 평균 PBR은 약 0.8x로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기형적인 자산 배분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다수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되어있는데, 국가 성장을 저해하고 출산율 문제를 악화시키는 1요소일 것이다. 성장이 나오고 이익이 나오는 분야로 자금이 이동해야 효율적인 자산 배분 구조가 될텐데 부동산은 ROE가 매우 낮은 자산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부동산 편중 현상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은 그저 투자자들이 돈을 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의 많은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다.
다행인 점은 이제 문화와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가 길지 않아 잡혀있지 않던 국민의 인식도 바뀌고 있고 해외 사례를 보기 용이해지며 한국과 해외 선진국의 제도 및 문화를 비교하게 되었다. 화룡점정으로 코로나 시기 개인투자자가 급증하며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펴져나갔다. 이제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주주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 관심이 많아지면 정치권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한다. 또한 국민들 사이의 합의점이 마련되면 사법부도 움직이기 마련이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도 천만 명이 훌쩍 넘은 개인투자자를 의식한 정책일 것이다. 앞으로도 정치권에서 관심을 계속해서 가질 것임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PE의 역할론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워낙 유명한 얘기니 가볍게 설명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다룰 문제를 필자가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궁금한 점은 ‘그렇다면 변화하는 상황에 PE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이다.
당연히 공익적인 목적의 PE의 역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PE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에 도움을 주며 최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다. KCGI 강성부 대표는 종종 왜 LP들의 돈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에 일조하려 하는 지, 공익적인 목적의 활동을 하는 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데 그때마다 이는 펀드의 이익을 위해 하는 활동이라고 밝힌다고 한다.
MBK파트너스는 2023년 연례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Korea remains cheap. Historically, Korean companies have traded at a “K-discount,” largely due to perceived poor corporate governance by controlling chaebol families. KOSPI currently trades at 11.8x P/E, 7.5 multiples below the Nikkei. On an EV/EBITDA basis, KOSPI trades at 8.4x, 2.3 and 6 multiples below the Nikkei and the Shanghai Composite, respectively. The K-discount extends to the private market. Our investments in this market were done at a 25% discount on average to the global comparables. Korea is the value market of Asia.
상장 시장만이 아니라 비상장 시장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존재하기에 한국에서 M&A 거래가 더 싸게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한국은 대주주의 1주와 소액주주의 1주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또한 큰 편이다. 10년 전 자료이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글로벌 M&A에 비해 한국 M&A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은 10~15%p 가량 높았다. 한국 주식의 멀티플이 다른 국가의 약 6~70% 가량임을 고려할 때 M&A 가격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DCF에 따르면 기업의 현금흐름을 통제할 권한이 있는 PE의 바이아웃 케이스의 경우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쌀 이유가 없다. 그러나 DCF는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기법이지만 너무 많은 가정이 들어간다. 따라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할인율, 영구성장률, 마진, NWC 등을 조정하곤 한다. 상장 기업의 멀티플도 거래 가격 산정 시 사용하기에 자연스럽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비상장 시장에도 녹아들어간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어찌됐든 중요한 점은 PE 입장에서의 M&A 가격조차 글로벌 평균,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싼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 이는 개선할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MBK의 말대로 비상장 시장에도 기회가 많겠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지배구조 개선의 측면에서 본다면 PE는 상장 시장에서 움직임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상장 시장에서 극심하게 나타난다. 또한 비상장 시장에서의 거래는 인수 측과 매각 측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상장 시장에서는 장내 매입, 공개매수, 블록딜 등 지분 매입과 주주 제안을 통해 기업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경영권을 공격할 수도 있다. 프리미엄이 붙더라도 기존 주가가 워낙 싸고, 기업가치 개선의 룸이 크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이 가는 길은 미국과 일본이 이미 걸어온 길이다. 미국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주주가치 극대화에 관심을 가졌고, 일본은 2010년대 들어 같은 길을 걸었다. 특히 일본의 과거 경제 상황은 한국과 닮아있는 모습이기에 더더욱 참고할 만하다. 미국과 일본의 케이스, 그리고 한국에서의 케이스를 통해 PE가 변화하는 환경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해봐야 한다.